토막 [세준 전력] Romantica 일센치 2015. 6. 29. 00:09 <세준 전력, 주제는 '노래' 입니다.주제로 삼은 노래는 The Melody 의 Goodbye.>처음 나의 이상증상을 알아차린 시점은 2년 전 처음 그와 여행을 갔던 날 밤이었다. 미식거리는 속 탓에 유쾌하지 않았던 그날 밤. 답지 않게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무섭다는 말만 연발하는 나를 끌어안으며 그는 계속해서 괜찮다는 말을 내 귓가에 속삭였고, 내 허벅지를 아프게 찌르는 단단한 무언가를 느끼며 나는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화끈한 열기로 인해 고층 빌딩처럼 우뚝 솟아오른 그것이 무섭고도 끔찍해서.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코끝을 기분 좋게 간질이던 바닷바람이 역하게 느껴져서 나는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했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연신 나의 어깨를 쓸어내렸지만 나는 그런 일말의 행동조차 견딜 수 없었기에 그를 계속해서 밀어냈더랬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웃어 보이는 그 얼굴 아래로 비친 상처 난 마음을 엿본 나는 말없이 눈물을 터뜨릴 뿐이었다. 미안해. 미안하다, 정말로.미안하다는 나의 눈물 섞인 사과에 그는 아무 말 없이 높은 콧대를 내 목울대에 처박은 채 깊은 한숨을 몰아쉴 따름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한없이 죄책감을 느끼다가도 은은한 조명과는 대조되게 노골적으로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것이 역겨워서 나는 계속해서 그를 토해냈다. 시퍼런 밤하늘 아래에서 한 고해성사가 너무나도 굴욕적이어서 나는 꺽꺽대며 눈물을 흘렸다. 평소 성숙하고 차분한 나의 모습을 사랑한다던 그의 말 따위는 잊은 채, 나는 벌겋게 물든 얼굴로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해.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얼굴로 그는 계속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목덜미에 와 닿는 그의 숨결이 귓가를 붉게 물들일 정도로 축축해서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동이 트고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있던 그의 앞섶이 마침내 가라앉고 나서도 나는 흐느낌을 멈출 수 없었다.Romanticawritten by 1cm퇴근을 앞두고 부산스레 움직이는데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진동을 해댔다. 힐끗 시선을 내려 액정을 바라보는데 노란 카톡 아이콘이 넓적한 스크린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다. 의아한 마음에 자리에 다시 앉아 컴퓨터 스크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익숙한 발신자로부터 몇 개의 메시지들이 도착해 있었다. [형][오ㅓ늘 퇴ㅡㄴ][조ㄷ므만 늦ㅈ게해요].....[미안]평소 딱 부러지는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오타들로 얼룩진 채팅창을 천천히 읽어 내리다가 마지막에 쓰인 익숙한 두 음절의 단어를 발견한 나는 비식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미안.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뻔했다. 덤덤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것도 잠시, 나는 멀쩡한 넥타이를 괜히 만지작대며 늦장을 부렸다. 문득 서랍장에 쌓여있을 콘돔의 개수가 몇 개나 남았을지 걱정이 돼서 나는 잠시 메시지 창에 무어라 말을 쓰려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아니지. 적어도 내가 이런 일에서는 나서면 안 되는 거겠지. 불룩한 고속방지턱처럼 솟아오르는 생각에 나는 둔한 몸짓으로 메시지 창을 끄며 쓴 웃음을 지었다. 마우스를 딸깍 클릭해서 컴퓨터의 전원을 끄자 까맣게 변하는 스크린 위로 허옇게 질린 내 얼굴이 가득 들어찼다. 일을 마무리 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워 입는 내 행동에 옆에 앉아서 일을 함께 처리하고 있던 동기가 눈치를 살피는 게 보였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낡은 가방끈을 어깨에 둘러맸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가자 일어서서 무어라 잔소리를 하고 있던 부장님이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가 싶더니 넌지시 묻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일찍 퇴근하네?...네, 몸이 조금 안 좋아서요. 죄송합니다.창백하게 질린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부장님이 툭 튀어나온 배를 살살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을 허락한다는 뜻의 제스쳐였다. 그 의미 없는 행동에 비식 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애써 그러한 충동을 눌러 참은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목에 걸고 있던 번듯한 사원증을 단말기에 찍으며 나는 얇은 모직 코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여전히 스크린을 가득 채운 노란 아이콘들이 번쩍이며 아우성을 쳐댔다. 미안, 미안, 미안.그만해.버럭 소리라도 내지르고 싶은 것을 애써 참으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 평소에는 즐기지도 않던 달달한 것이 먹고 싶어서 굳은 얼굴로 나는 회사 맞은편에 위치한 유명 베이커리로 발길을 돌렸다. 실수로 눌러버린 홀드 버튼 탓에 다시 납작한 화면 위로 떠오른 아이콘들이 일렁이며 춤을 췄다. 그 모습이 못내 거슬려서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다정하기 그지없는 연하의 애인이 베푸는 과도한 친절에 울컥 짜증이 치밀었다.딸랑 하고 울리는 베이커리의 유리문을 열어젖히고 나온 나의 손에는 어느새 작은 봉투 두어 개가 들려있었다. 화려한 로고가 박힌 하얀 비닐봉지 안에 담긴 조각 케이크 두 조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나는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본래 자극적인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단 음식 또한 즐기지는 않았지만, 오늘 같은 날이면 나는 빠짐없이 베이커리에 들러 진열된 조각 케이크들 중에서도 가장 달아 보이는 상품들을 골라 사곤 했다. 초콜릿 무스 크림과 그 위로 솔솔 뿌려진 스프링클, 촉촉하게 젖은 티라미스와 생크림. 평소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만큼 달콤한 것들이었지만 이상하게 오늘만큼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부스럭대는 봉지의 손잡이에 손목을 끼워 넣은 채 나는 다시 주머니에 꽂아 넣었던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퇴근 전까지만 해도 바쁘게 울어대던 핸드폰이 잠잠한 것에 괜히 기분이 가라앉았다. 나는 봉지 속으로 손을 밀어 넣고는 예쁘게 포장된 마카롱 하나를 집어 들었다.분홍색의 마카롱을 보자니 괜히 울적했던 마음이 사라지는 것 같아 허겁지겁 투명한 포장용지를 벗겨내고는 고운 색상으로 물든 설탕 덩어리를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골이 울릴 만큼 지독하게 단 맛이 미각을 마비시켰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열심히 턱을 움직였다. 침으로 인해 눅눅해진 표면으로 치아가 파고들자 바삭, 하고 단단하던 내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불쾌한 그 소음을 연속적으로 들으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래서 마카롱이 싫다. 시트 케이크처럼 그냥 조용하게 무너지면 얼마나 좋을까. 꼭 이렇게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무너져야 할까. 비참하게 남겨진 모습을 봐달라는 듯이. 미련함 탓에 맞이한 종말을 오롯이 감싸 안아달라는 듯이. 머릿속으로 두서없는 불평들을 쏟아내던 나는 고개를 두어 번 흔들며 발걸음을 옮겼다. 쓸데없는 행위의 연속이었다. 불분명하게 치솟는 호르몬으로 인해서 얼굴에 울긋불긋하게 열꽃이 피던 십 대의 어느 날처럼. 문득 아파오는 머리 탓에 생각이 많아진 것이라 치부하며 나는 계속해서 걸음을 재촉했다.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공원 앞을 지나치자 꺾인 들풀들의 향이 사방을 짙게 물들였다. 한가로이 벤치에 앉아 담배 끝을 태우는 남자와, 그 아래에 앉아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는 강아지, 그리고 호수 변두리를 따라 후다닥 달음박질을 치는 고양이를 순차적으로 바라보던 나는 눈을 굴려 다른 벤치에 앉아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연인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남색의 맨투맨 티셔츠를 깔끔하게 소화한 남자와 노란색의 블라우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여자가 포옹을 멈추고는 손장난을 하며 은근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저 노골적인 눈길의 의미는 뻔했다. 그 은밀한 시선들에 덜컥 겁이 나서 나는 황급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재촉하면 할수록 더욱 가까워지는 그들의 모습에 괜히 목이 타서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들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천천히 닦아내야 했다. 한참동안 진득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커플의 얼굴이 천천히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이내 작은 마찰음과 함께 완전히 겹쳐진 그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갑자기 시야가 흔들리고 속이 메스꺼워 견딜 수가 없었다. 불규칙적으로 터져 나오는 숨소리를 느끼며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이내 머리를 휘휘 내젓고는 멀리에 보이는 공원의 출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미친 사람처럼 달리고 나서야 천천히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시야에 눈을 깜빡이며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서로의 몸을 훑던 그 노골적이면서도 진득한 시선이 너무나도 역겨워서 금방이라도 신물이 올라올 것 같았다. 이끼가 추하게 눌러 붙은 오래된 수조처럼 역겹기 그지없던 그 장면을 되새기며 나는 한적한 공간에서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해야 했다. 나는 땀에 젖은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8시 17분. 여전히 노랗게 화면을 채우는 아이콘을 마지막으로 나는 눈을 감았다. 관자놀이 부근에서 쿵쿵 뛰어대는 맥박소리가 귓가로 고스란히 파고들었지만 어쩐지 정신이 멍했다.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내 자신이, 스크린 액정에 노랗게 떠서 반짝이는 아이콘들이, 황홀한 표정으로 농염하게 혀를 섞던 그 두 사람의 모습이. 다시 멀쩡하던 속이 뒤집어져 구역질이 치밀었다.황급히 손수건으로 입가를 틀어막자 허옇게 묻어나오는 맑은 액체를 보며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기운이 다 빠진 몸을 지탱할 여력이 없어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더니 주변을 배회하던 고양이가 나를 경계하며 털을 세우는 것이 보였다. 위협적으로 낮은 숨소리를 내는 고양이를 힐끗 곁눈질하던 것도 잠시, 나는 마른 손바닥에 얼굴을 묻어버리고 말았다. 여적 스크린에 남아 나를 괴롭히는 ‘미안’ 이라는 한 단어에 몸서리를 치며 과민반응을 하는 이중적인 모습이, 끔찍하게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낯익은 향기가 진동을 했다. 조심스레 문을 닫고 신발을 벗는데 시선이 착지한 곳에 높은 여자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것이 사뭇 우스워서 나는 번져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아마도 세심한 제 애인의 배려이리라. 어쩐 일인지 작게 열린 문틈 새로 높은 교성이 흘러나와 귓전을 따갑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미치도록 거슬리던 그 소리에 이제는 익숙해진 모양인지 덤덤한 심정이었다. 그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기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식탁에 덩그러니 놓인 담배 한 갑과 라이터가 처량해서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나는 발걸음을 옮겨 냉장고 앞으로 향했다. 힘을 주어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열리는 냉장고 문틈으로 서늘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냉기에 몸을 부르르 떨던 것도 잠시, 손에 들고 있던 조각 케이크를 봉지채로 밀어 넣자 부스럭대는 소리가 시끄럽게 집안에서 울려 퍼졌다. 귀를 아프게 하는 소음을 들었던지 안방에서 연속적으로 터져 나오던 신음소리가 잠시 끊겼지만 그것에도 아랑곳 않고 나는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집으로 오는 길에 본 광경 탓에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해서 인지 피곤함이 몰려들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서늘하게 식어있는 소파 위로 몸을 길게 뉘이자 우습게도 금세 잠이 솔솔 밀려왔다. 방음이 되지 않는 벽 탓에 안방에서는 축축한 마찰음과 신음소리가 산발적으로 터져 나왔지만, 이제는 아무렴 상관없다는 생각에 나는 감고 있던 눈을 슬쩍 떴다. 조금 더 벌어진 문틈 새로 가느다란 인영 두 개가 뒤엉켜 있는 모습이 아프도록 눈에 들어왔다. 기둥처럼 단단해 보이는 목에 얼굴을 파묻은 채 순차적으로 쌓이는 열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끙끙대는 여자의 얼굴과, 그런 그녀에게 하체를 아프게 쑤셔 박는 그의 뒷모습에 또 다시 현기증이 사나운 파도처럼 밀려들어서 나는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단단한 어깨며 길쭉한 팔, 그리고 힘을 주면 둥글게 부풀어 오르는 근육으로 뒤덮인 허벅지. 분명 그 모든 것이 내가 사랑하는 그의 일부였지만 나는 그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를 온전히 사랑해 줄 수 없었다. 그에게 나를 온전히 줄 수 없었다. 그로 인해 힘들어 하던 그에게 나는 언제나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그럼 그는 나에게 웃으면 이렇게 말을 해오곤 했다. 괜찮아.그 말 후에 코를 스치는 그의 어깨에 또 다시 속이 울렁거리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그가 이따금씩 귓불을 붉게 물들인 채 나오는 이유를, 어쩌다 한 번씩 나와 말을 섞다가 느닷없이 턱에 힘을 주는 이유를 알아차린 시점부터, 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힘들구나. 그 사람이 나 때문에. 많이 힘들구나. ...많이 힘들면, 다른 사람이랑 자도 돼. 처음에는 내 말에 펄쩍 뛰며 화를 내던 그도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말에 수긍하듯이 태도를 바꿔갔다.절대 안 돼. 싫어. 못하겠어. 어떡할까. 형. 나 힘들어. 그리고,...미안해. 미안해 라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언젠가 그가 내게 뱉었던 것과 같은 대답을 내뱉을 뿐이었다. 괜찮아. 어느새 바뀌어버린 우리의 대화법에 묘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는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게 무섭도록 따뜻했으며 친절했다. 6시 정각을 가리키는 시계바늘처럼 이제는 완전히 뒤집어진 우리의 소통 방법에 의해 나는 그가 내게 괜찮다는 말을 내뱉을 때마다 느꼈을 감정들을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괜찮아. 아마도 괜찮을 거야. 모르겠다, 난. 음, 글쎄. 사실 괜찮지 않은 것 같아.조금씩 그가 과거에 느꼈을 마음들을 알아차리는 것에 익숙해져갈 무렵, 그는 내게 같은 말을 제법 단호하게 내뱉었더랬다.내가 다른 사람이랑 자고 있는 모습, 보지 마.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내게 늘 같은 말을 할 뿐이었다. 그냥, 싫어. 이상하게 속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꽤 덤덤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그의 말을 듣고 집에 들어가지 않았던 어느 늦은 밤,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동네 찜질방 구석에 누워 초라하게 잠이 들려던 내게 전화를 건 그는 다짜고짜 내게 보고 싶다는 말을 토해내며 울음을 터뜨렸다. -형. 어디야. 보고 싶어.어쩐지 슬슬 잠이 달아나는 기분에 나는 그의 목소리에 기대 몸을 천천히 일으킬 따름이었다. 구석에 등을 댄 채 웅크려 앉음과 동시에 어린아이 같은 그의 웅얼거림이 귀를 간지럽혔다. 높게 내질러지는 교성에 의해 곧 삼켜지기는 했지만 나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불안해, 형.-무서워.줄줄 새어나오는 흐느낌을 삼켜내며 그가 제법 어른스럽게 중얼거렸다. 보고 싶어. 꽉 막힌 목에서 새어나온 다 쉰 목소리에 나는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파란 찜질용 웃옷은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의 목소리를 말없이 듣고 있을 무렵, 그가 길게 늘어지는 신음을 토해냈다. 살이 섞이며 나는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거칠어진 호흡소리에 나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형, 하고 그가 나를 다시 불렀다. 응, 하고 나는 대답했다.-사랑해....그래. 작게 그의 마음에 대한 대답을 뱉어놓노라면 그는 그 이후로도 한참동안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말없이 전화기에 고른 숨소리를 뱉어내곤 했다. 드리우는 침묵의 장막이 불편하게 폐부를 콕콕 찌를 무렵에서야 나는 말없이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였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으로 울먹이다가도 밤이 지나 아침이 오면 다시 멀쩡해져서는 살갑게 웃음을 짓는 얼굴. 절정으로 치달아 점점 커지는 신음소리를 잡념으로 흘려내려는데 배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이 징징 울음을 터뜨렸다. 막 잠이 들것처럼 나른한 기분에 잠겨있던 나는 눈가에 올려두었던 손등을 내려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손자국이 묻은 액정에 익숙한 이름 석 자가 둥둥 떠 있었다.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어느새 미적지근하게 덥혀진 소파에서 상체를 일으키며 전화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 너머에서 끊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이어지는 교성이 흘러나와 예민한 귀를 콕콕 찔러댔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자 무언가에 의해 억눌린 것처럼 한껏 낮아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울었던 걸까. -형.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주방으로 발을 옮겼다. 대답 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젖히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그가 다시 형, 하며 나를 불러왔다. 응, 듣고 있어. 마지못해 대답을 해주자 그가 잠시간의 침묵 끝에 더욱 낮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 너무 아파. 근데, -보고 싶어요.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굴 것같이 잔뜩 멍울진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랫입술을 꾹 감쳐물었다. 괜히 제 멋대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분이 원망스러워서 나는 냉장고 속으로 얼굴을 들이민 채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오래된 반찬 냄새가 코를 아프게 찔러왔다. 한참을 눈을 굴리고 서 있는데 차곡차곡 쌓여있는 냉장고 반찬통 뒤로 작은 조각케이크 하나가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향해 손을 뻗은 나는 냉장고를 닫고는 손에 들린 조각 케이크를 물끄러미 내려다 봤다.전화기 너머는 여전히 높은 여자의 신음소리와 젖은 마찰음으로 물들어 있는 상황이었다. 빨갛고 파랗고, 아, 내가 싫어하는 초록색도 넣을까.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케이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데 하얀 생크림 위로 파랗게 피어난 곰팡이들이 보였다.언젠가 그에게 먹으라며 건네줬던 케이크 같은데, 잊어먹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플라스틱 용기에까지 파랗게 돋아난 곰팡이를 서늘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것도 잠시 나는 개수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아.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다급한 신음소리가 거슬려서 나는 다 썩어서 곰팡이가 잔뜩 피어버린 케이크를 망설임 없이 개수대에 쏟아 부었다. 철퍽 하고 케이크가 개수대 위로 쓰러지며 다 녹아버린 생크림의 파편이 사방으로 지저분하게 튀어 올랐다. 잘 다린 셔츠 앞섶에 튄 생크림 한 뭉텅이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그가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형, 준면이 형. 듣는 사람의 입을 바싹 마르게 할 만큼 애처로운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분명 그에게는 보일 리 없겠지만 그는 알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작게 한숨을 내쉬며 셔츠를 촉촉하게 적신 생크림 덩어리를 닦아내는데 그가 절절한 목소리로 다시 고백을 해왔다.-사랑해요.그 말에 멈칫 하던 것도 잠시, 나는 곧 신경질적으로 개수대 레버를 돌려 물줄기를 쏟아냈다. 뜨끈한 김이 뭉근하게 솟아오르는 물줄기 아래에서 제멋대로 뭉개지는 시트 케이크를 바라보며 나는 계속해서 입술을 손가락으로 쥐어뜯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자꾸만 얼굴이며 귀 끝이 화끈거려서 화가 났다. 차분하게 이어지는 숨소리를 끝으로 전화를 끊은 내가 겁 없이 손을 물줄기 아래로 밀어 넣었다. 화끈한 열기 탓에 젖은 손등이 금세 벌겋게 부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개수대 위로 상체를 기울였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역한 기운에 뒤집어진 속이 멀건 위액을 연거푸 토해냈다. 참을 수 없었다. 보고 싶다며, 사랑한다며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그가. 그리고 종래에는 무기력하기 그지없는 밑천을 드러내는 내 자신이. 몇 번이나 토악질을 해대자 텅 비어버린 속이 싸하게 아파왔다.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다시 물줄기 속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이 금세 다시 벌겋게 물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는 물줄기 속으로 내 얼굴을 처박았다. 화끈거림을 넘어서서 근질거리기 까지 하던 얼굴이 조금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습기 그지없는 상황에 웃음을 픽 터뜨리자 투명한 공기방울이 보글보글 귀 옆으로 올라왔다. 점점 숨이 가빠오며 머리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처박고 있던 얼굴을 들지 않았다. 지친 나머지 그럴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다지 숨을 쉬고 싶지 않았다.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물 위를 부유하는 케이크 찌꺼기들이 역겨워서, 벌겋게 달아 올라있을 내 얼굴이 보기 싫어서, 개수대 옆에서 보란 듯이 울어대는 전화기가 미워서.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새삼 비참한 기분이 몰려들어서, 더 이상 그를 눈에 담는 행위를 견딜 수 없었다. -섹스기피증+결벽증+정신질환 삼박자를 고루 갖춘 병신같은 연성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틈새 '토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준 전력] 꽃밭에서 (0) 2015.06.29 [카준 전력] 아가미 (0) 2015.06.29 [열준 전력] 흑심 (0) 2015.06.29 [첸준 전력] 노란 장미의 꽃말을 아십니까 (0) 2015.06.29 [카준 전력] 비로소 (0) 2015.06.29 '토막' Related Articles [세준 전력] 꽃밭에서 [카준 전력] 아가미 [열준 전력] 흑심 [첸준 전력] 노란 장미의 꽃말을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