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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카준 전력] 아가미

 



<카준 전력, 주제는 '여행' 입니다.>
































나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2001.09.11. 오전 여덟시 사십육 분을 기점으로 범람하는 강물처럼 긴박하게 흘러가던 그 날 하루. 상부의 보고를 듣고 동료인 카이의 기프트(gift)를 이용해 현장으로 단번에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은 아비규환의 연속이었다.

 



Code name SUHO, accessibility, maximum. 기계적으로 던진 말에 이어플러그를 통해 내려온 오더는 급박하기 그지없었다.

 



-This is GE10988652 speaking. Unlock the potential gift immediately.

 



Roger that. 폭포수처럼 시원스레 쏟아져 내리는 말을 끝으로 나는 기프트를 발현시켰다. 기프트 리시버(gift receiver) 중에서도 몇 없기로 유명한 원소술사 중 한명인 내게 주어진 코드네임은 수호였다. 준면이라는 이름의 발음이 너무 어렵다며 툴툴대는 몇몇 인사들을 위한 작은 배려였지만 그런 내 행동에 누구보다도 좋아하던 것은 카이였다.

 



바뀐 코드네임이 멋지다며 엄지를 세우고 웃어 보이는 그 얼굴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그저 똑같이 이를 드러내며 바보같이 웃어 보일 수밖에. 그리고 그 날, 불기둥에 휩싸여 녹아내리는 유리창을 눈앞에 두고도 그는 똑같은 얼굴로 내게 웃음을 보였었다. 오늘도 수고 좀 해줘, 수호. 그 말을 끝으로 제 기프트인 순간이동 능력을 사용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는 훤칠한 뒷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멍청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랬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연속적으로 치솟는 불기둥을 잠재우느라 과도하게 힘을 쏟아 부었던 탓에 내게는 팔 한쪽을 들어 올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사납게 이를 세운 채 달려드는 불기둥 위로 내려앉는 물줄기가 점점 약해질 때 즈음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익숙한 얼굴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더랬다. 10, 30, 1시간, 3시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커지는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는데, 이어플러그 너머로 한 결 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사상자들의 이름을 덤덤한 어조로 읽어 내렸다.

 



불안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기프트를 가진 그가 그리 쉽게 죽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불안함에 떨고 있었다. 손톱이 흉하게 뜯겨져 피가 몽글하게 맺힌 살갗을 여전히 입에 문 채 나는 검은 연기로 휩싸인 건물을 황망하게 바라볼 따름이었다. 한참을 매끄럽게 이어지던 목소리가 어느 순간 늘어난 카세트 테이프처럼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그리고 카이. 잠시간 이어지던 침묵에 마침표를 찍는 익숙한 이름에 나는 입에 물고 있던 손을 허리께로 툭 떨어뜨렸다.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멍 해지는 귓가가 거슬려서 머리를 두어 번 흔들어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닥으로 떨어진 청력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까만 잿더미로 부서져 내린 건물 위로 다시 한 번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이어플러그 너머로 또 다시 오더가 내려왔지만 나는 멍청하게 그 자리에 우뚝 서있을 뿐이었다.

 



나는 진정 몰랐다. 오늘도 잘 해보자며 손을 흔들어 웃어 보이던 그 행동이, 긴 팔 다리가 돋보이던 그 뒷모습이, 순간이동을 해 현장으로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침대에 누워 마주보았던 그 얼굴이, 진정 마지막이 될 줄이야.

 



예민한 손가락 끝을 간질이던 물방울이 마침내 툭 하고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지만 노골적인 그 마찰음을 들으며 나는 눈을 깜빡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열기를 품고 있었던 그가, 차갑게 식어버렸다니. 머리 뒤에서 쾅 하고 울리는 굉음에 나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마지막이었는데. 그랬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왔다. 답답하게 막혀오는 명치를 두드리며 나는 거세게 기침을 해댔다. 마른침이 크게 벌어진 입술 새로 줄줄 새어나왔지만 붉어진 눈을 굴리며 나는 정신없이 그의 모습을 찾았다.

 



없다, 없어. 정말로.



 

하얗게 타오르는 고층빌딩을 끝으로 나는 마침내 나의 작은 세상이 기울어지는 것을 보았다. 김종인 이라는 낯익은 이름이 지닌 울림처럼, 슬프도록 삐뚜름하고 불완전한 각도로 기울어지던 그것은 이내 새파란 물줄기 안에 갇혀 까맣게 잠겨 들어갔다.

 



불투명한 공기방울을 내뿜으며 그것은 천천히 바닥을 향해 가라앉았다. 아가미를 잃어 숨을 쉬지 못하는 나처럼, 깊숙이, 더 깊숙이.

 


























아가미

written by 1cm


























 


어느 순간부터 늘 같은 꿈을 꿨다. 그 날의 컨디션이나 기분, 잠이 들기 전 눈에 담았던 것들, 그날 들었던 음악 따위는 상관도 없다는 듯이 그 꿈이 품은 장면들은 언제나 동일했다. 프로젝터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시나리오를 지닌 그 꿈의 시작은 언제나 거대한 동글 앞에 서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실수로 뒤집어엎은 잉크병 아래로 번진 잉크자국처럼, 징그럽게 까만 그 중앙을 향해 홀린 듯이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귀가 간질거리곤 했다. 마치 누군가가 예민한 귓불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처럼. 어깨를 움츠리게 만드는 아득한 속삭임에 슬슬 발걸음이 무겁게 내려앉을 무렵, 저 너머에서 비릿한 물 냄새가 풍겨왔다.

 



유쾌하지는 못한 악취에도 반가움을 느끼고 달리다 보면 나오는 커다란 강은 늘 내 기를 죽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까만 먹물로 채워진 것 같은 공터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서 있노라면 저 아득한 곳에서부터 낡은 나룻배가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뱃머리에 램프를 내건 채 나를 향해 다가오기 일쑤였다. 그리고 여행은 시작된다. 언제나 같은 궤도를 돌고, 또 도는 여행.

 



끼익 하고 흘러나오는 낡은 나룻배의 비명소리는 언제 들어도 괴롭다. 요란스런 나무판자의 신음성에 허옇게 눈을 까뒤집은 뱃사공이 갸웃거리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치켜뜨던 것도 잠시, 주름진 얼굴 위로 소름끼치는 웃음을 내걸며 손을 내미는 그 모습에 나는 진저리를 치며 마침 주머니에 들어있던 동전 두어 개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짤랑거리며 쇠금속이 내는 소음에 더욱 음습하게 웃음을 지어보인 그가 구부정하던 상체를 더욱 수그렸다.

 



느릿하게 노를 젓는 그의 행동을 따라 뾰족한 뱃머리를 지닌 나룻배가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혹시 강을 이루고 있는 액체가 정말로 먹물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손을 물속에 넣어보고 싶었지만 수면 아래로 비치는 녹색의 얼굴들을 보자니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참을 말없이 노만 젓던 탐욕스러운 뱃사공이 이내 짤막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강을 건너지 마오,

저 너머로 보이는 것은 영원한 안식.

망각의 강을 건너면

흐르는 눈물의 의미도 사라진다네.

이 강을 건너지 마오.

안식의 의미는 영원한 이별.

망각의 강을 건너면

흐르는 눈물의 의미도 사라진다네.

 



의미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노랫말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읊자 힘겹게 노를 젓던 뱃사공의 얼굴 위로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모습이 어쩐 일인지 싫지는 않았기에 나는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망각의 강을 건너면 흐르는 눈물의 의미도 사라진다네.

 



한참동안 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느새 나룻배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강의 끄트머리에 다다라 있었다. 까맣게 발목까지 차오르는 물줄기를 보며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빠르게 뛰어 마른 땅 위로 착지했다. 하얗게 변해버린 동공을 이리저리 굴리던 뱃사공이 내 발바닥이 바닥과 부딪혀 낸 작은 소음에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노를 저었다. 끼익, 끼익.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나룻배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던 내가 긴장감 탓에 경직된 팔을 털며 천천히 등을 돌렸다.


 

 

아마 오늘도 보이겠지. 흉측한 세 개의 머리, 그리고 그 위에서 위협적으로 이를 드러내고 달려드는 뱀의 머리. 하지만 등을 돌리자 눈앞에 드러나는 공터에 나는 눈을 부릅떴더랬다. 늘 똑같은 패턴으로 흘러가던 과정이 비틀리는 것을 목격하자 괜히 알 수 없는 흥분감이 목 끝까지 차올라 목이 메어왔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쥔 채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자 파랗게 일렁이던 하늘 아래로 까만 신전이 나타났다.



 

흑요석으로 지은 것처럼 번쩍이는 그 모양새에 절로 기가 죽었지만 목을 간질이는 묘한 울림은 여전했기에 난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주인을 잃어 언제나 쓸쓸하게 버려져 있었던 신전의 내부. 막 꺾어다 놓은 것처럼 싱싱한 월계수 나뭇가지들로 장식이 되어있는 문 너머에서 산뜻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코를 알싸하게 건드리는 월계수 열매의 향기와 뒤섞여 풍겨오는 시큼한 향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공기를 간질이는 이 향기가 어딘가 낯익게 느껴져서 나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수십 개의 번쩍이는 기둥을 지나치자 드러나는 큼직한 왕좌에 눈을 크게 떠 보인 것도 잠시, 나는 그 위에 앉아있는 두 개의 길쭉한 인영을 발견하고는 눈을 가늘게 떠보였다.

 



윤기가 흐르는 까만 머리카락과 그 아래에 위치한 창백한 얼굴이 퍽 위협적인 남자와 창백한 얼굴 가득 슬픈 표정을 지은 채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에 나는 멍한 표정을 지어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 또한 늘 보아왔던 꿈의 내용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무언가가 심히 낯설게 느껴지는 이 상황이 싫어 나는 천천히 노래를 불렀다.


 

 

안식의 의미는 영원한 이별...

탐욕스러운 뱃사공이 목청 좋게 부르던 노래였다. 내 노랫소리에 왕좌에 앉아있던 남자가 위엄 있게 굳히고 있던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싱싱한 월계수 나뭇잎으로 붉은색의 머리카락을 예쁘게 꼬아 치장한 여자도 작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상황들의 연속에 나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인형 같은 얼굴로 앉아있던 여자가 슬퍼보이던 표정을 거두고는 옆에 앉아있던 남자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어딘가 기뻐 보이는 얼굴로 여자의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이던 남자가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의 얼굴을 쏘아봤다. 제법 매서운 눈초리였지만 그에 아랑곳 않고 앉아있던 여자가 남자의 단단해 보이는 팔을 붙잡은 채 작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 여자의 행동에 누그러진 얼굴로 까만 털로 뒤덮인 제 턱을 느릿하게 쓰다듬던 남자가 나를 향해 손짓을 해보였다.

 



나를 부르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옮길 따름이었다. 발걸음을 재촉할수록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더욱 어깨를 움츠렸다. 고서에 나오는 식상하기 그지없는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꼭 어울리는 얼굴을 한 남자와, 비너스의 모습과 견주어도 뒤쳐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여인의 모습이 너무나도 이질적이었기에 나는 말없이 눈을 굴릴 뿐이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서자 잠시 동안 느긋하게 눈을 굴리며 나를 바라보던 남자가 두툼한 입술을 움직여 굵직한 목소리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어딘가 끊어질 듯이 위태롭게 이어지는 어조였지만,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년 간 수십 종류의 언어학을 들어온 내가 알아듣기는커녕 뜻을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난해한 울림을 가진 언어가 존재했다니. 동료들이 듣는다면 경악성을 내지를만한 상황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작게 웃음을 짓고 서 있던 나를 바라보며 남자가 다시 무어라 질문을 던져왔다. 나는 여전히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은 꿈이었다. 아침이 되어 깨어난다면 다시 백지로 남아버릴 꿈. 다시 밤이 되어 뱃사공의 얼굴을 본다면 그제야 어렴풋이 모든 것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백일몽과도 같은 꿈.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멍한 얼굴로 노래를 부르는 내 행동에 남자가 송충이를 연상시킬 만큼 짙은 눈썹을 보기 싫게 구부리며 옆에 앉아있던 여자를 노려봤다.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 또한 안타깝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저 너머로 보이는 것은 영원한 안식.

망각의 강을 건너면

흐르는 눈물의 의미도 사라진다네...

 



망각, 망각. 그것은 매일 아침 나를 괴롭히는 악마. 숨을 쉬지 못하고 끝없이 해수의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나를 더욱 절망하게 만드는 백일몽. 잔인한 바다.

 



나는 까맣게 번쩍이는 남자의 수염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까만 머리카락을 계속 보고 있자니 문득 누군가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누구지, 누구였을까.



 

까무잡잡한 얼굴과 둥그스름한 콧방울, 그리고 각이 진 턱. 부리부리했던 눈동자가 자꾸만 눈앞에 맴돌아서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느새 노랫소리는 멈춰 있었다. 문득 양 볼이 견딜 수 없이 간질거렸다. 짜증스런 표정으로 서 있던 나는 손을 들어 내 양 볼을 쓸어내렸다. 거친 손길에 긁힌 살갗이 욱신거리며 아파왔지만 나는 손끝에 묻어나오는 축축한 무언가를 보곤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손을 흥건하게 적신 투명한 액체를 바라보던 나는 그것에 가만히 내 혀를 가져다 대 보았다. 혀끝에 닿은 그 감각이 견딜 수 없이 짭짜름해서 나는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내가 보고 삼켰던 바닷물을 도로 왈칵 토해내고 있었다.

 



소실된 아가미 탓에 숨을 쉴 수 없었던 나를 더욱 괴롭히던 짜디 짠 바닷물. 마시고 또 마셔도 계속해서 폐부로 밀고 들어와 기어코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던 그 바닷물이 나의 눈에서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더불어서 물에 푼 먹물처럼 피부가 까무잡잡하던 남자의 얼굴이 내 눈을 통해 새어나오는 바닷물을 따라 찔끔 찔끔 흘러나오고 있었다.

 



파랗고 드넓어서 무서웠던 나의 바다가, 역류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 무서워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두려웠다. 파란 물보다도, 막혀버린 아가미보다도. 머릿속에서 절로 그려지는 그 남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나는 계속해서 짜디 짠 바닷물을 토해냈다.

 



줄줄 새어나온 소금물에 쓸린 눈가가 따끔거리며 아파왔다. 동시에 천천히 수면을 향해 떠오르는 그 거뭇한 얼굴이 너무 아파 나는 눈을 깜빡였다. 내 앞에 앉아있던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작게 미소를 흘렸다. 어느새 비어있던 등 뒤에서 익숙한 향내가 흘러나왔다.

 



와일드 사이프러스. 샤워를 끝마친 후 내가 늘 손목에 뿌렸던 향수. 그리고,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따라 똑같이 사이프러스 향으로 몸을 적시던 그 사람. 카이. 맞아, 카이였지.

 



확 터져 나온 눈물을 따라 봇물처럼 퍼져나가는 기억에 단단하게 몸을 지탱하고 있던 다리가 자꾸만 후들거리며 떨려왔다. 카이, 카이. 아니, 종인아. 내가 기어코 불러주지 못했던 그 이름. 나는 마침내 내 볼을 따라 흘러넘치는 물줄기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미련하게 이제야 그것을 정의할 수 있었다. 그것은 눈물이었다. 그것은 남은 미련과 미안함에 흘려보내는 나의 마음이었으며, 아가미를 뒤집은 채 까만 밑바닥에 의해 집어삼켜지는 나를 보며 그가 흘린 눈물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물속에 들어온 것처럼 젖어든 시야 탓에 나는 계속해서 눈을 깜빡였다. 까만 머리카락의 남자가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와 함께 환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침내 코끝에 맴돌던 사이프러스 향이 짙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코끝이 찡할 정도로 짙은 향내에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나는 좁은 시야를 비집고 천천히 들어오는 낯익은 얼굴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웃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게 보였던 모습 그대로, 그는 그때와 똑같은 얼굴로 콧잔등을 찡그리며 환하게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새벽녘의 어슴푸레함을 품고 있던 주변이 점점 밝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무서웠다. 이렇게 밝아지다가, 결국에는 빈 공간만을 제외한 채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와 함께 까만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렸으면. 망가진 아가미 따위는 잊어버린 채, 그냥 서로에게 의지하며 천천히 가라앉았으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더욱 굳게 눈을 감았다. 잔뜩 힘을 준 탓에 구겨진 눈가가 얼얼하게 아파왔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가라앉을 것이다. 그와 함께, 그를 끝내 온 몸으로 감싸 안아, 함께 침몰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소원이며, 내가 간절히 염원하는 백일몽의 결말이었다.

 



나는 눈을 감은채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과도하게 힘을 준 탓에 주먹을 움켜쥐고 있던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투박한 손길이 나의 입술 위를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살살 달래듯이 아랫입술을 매만지는 손길에 나는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거기 있지?

 



참을 수 없이 불안해져서 결국에는 말문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한 번 입을 열자 터진 눈물길을 따라 두려움이 급격하게 몰려들어 나는 눈을 번쩍 떠버리고 말았다. 서서히 밝아지던 시야가 동이 트듯이 급속도로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가늘어진 눈구멍 속으로 그의, 종인의 얼굴이 박히듯이 들어왔다. 나는 숨을 참았다. 그를 볼 수 없게 된 이후로 물속에서 늘 그래왔듯이, 아가미가 없는 내 모습이 초라해서 숨을 참았다. 곧 소금물로 절여질 장기들이 벌써부터 아파서 자꾸 눈물이 났다.

 



그가 하얗게 웃어보였다. 그의 모습을 따라 나도 인상을 찡그리며 입 꼬리를 올렸다. 너무나도 하얗게 웃어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다시 일렁이는 물살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나는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내 그의 미소로 인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가 조심스레 나의 목에 입을 맞췄다. 나는 다시 잠시 숨을 참았다. 무언가로 인해 막혀있던 폐 속으로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먹먹하게 젖어드는 눈가를 느끼며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하얗게 물든 공간 속에서 나는 그의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아련하게 남은 그의 체향을 찾아 나는 코를 벌름거렸다. 덜 여문 귓가에 나직한 속삭임의 잔상이 맴돌았다.

 



이제 올라가.

 



그의 한 마디에 나는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기력하게 심해 저 아래로 내려가던 것을 그만두고 파란 해수면을 향해 힘차게 팔을 뻗었다. 하늘을 향해 날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달음박질을 치자 점차적으로 숨이 가빠왔다. 동시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찌꺼기처럼 몸속에 고여 있던 바닷물을 쥐어짜내며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환희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을 때, 동그란 백열등에서 퍼져 나온 불빛이 따끔하게 안구로 파고들었다.

 



그 하얀 불빛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나는 몇 번이나 눈을 굴렸다. 그런 내 모습을 걱정스런 얼굴로 내려다보던 한 남자가 조심스레 말을 붙여왔다. 수호. 수호?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그 이름에 나는 상체를 조심스레 일으켰다. 뒤로 젖혀져 있던 의자가 나의 움직임을 따라 소리도 없이 수축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여전히 먹먹한 심정이었다. 목울대가 내 의지와는 달리 정신없이 위 아래로 움직이며 마른침을 삼켜댔다. 이유도 모르게 코끝이 찡하게 아려서 나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남자의 허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던 남자가 비식 웃음을 흘리며 내 등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길쭉하게 마른 손마디가 딱딱해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상하다. 그동안 질리게도 삼켰던 소금물은 분명 아까 미친 듯이 쏟아냈는데. 더 나올 리가 없을 텐데. 실없는 말을 하며 나는 남자의 가슴팍에 더욱 얼굴을 파묻었다. 그 행동에 간지러움을 느꼈던지 남자가 몸을 뒤척이며 작게 웃어보였다. 남자의 움직임을 따라 그의 왼쪽 가슴팍에 달린 금색 배지가 백열등 불빛에 의해 반짝이며 빛을 냈다.

 



Dr. Park.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는 그 이름을 보며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갑작스레 어린애처럼 어리광을 부리더니 급기야 웃음을 터뜨리는 내 행동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던 남자가 조심스레 나를 밀어내며 시선을 부딪혀왔다. 또 이상한 꿈 꿨어요?

 



“...또 까만 물속에서 질식하는 꿈?”



 

잠시 머뭇대다가 남자가 던진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여보였다. 그런 내 모습에 남자가 걱정스레 인상을 구겼지만 나는 조용히 웃어 보일 따름이었다.

 



까만 물속에서, 그 아이를 만났어. 내 말에 하얀 가운을 멋들어지게 입은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그 아이? 누구? 볼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묻는 행동이 왠지 간지러워서 나는 또 다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어. 내 말에 남자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매섭게 치솟은 눈썹이 무서워서 나는 고개를 푹 수그려야 했다. 이번에는 괜찮았어.

 



“...아가미를 새로 달아 줬거든.”



 

그 한마디에 다시금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파랗고 까만 바다. 그 속에서 만난 그 아이가 너무나도 하얗고 따뜻해서 소금물이 다 말라버렸어. 그 한마디를 꾹 삼키며 나는 큼직한 눈망울을 향해 웃어보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달아준 아가미가 시도 때도 없이 화끈거려서 나는 정신없이 몸을 흔들었다.

 



이제 올라가.



 

그의 말대로, 이제 그만 푸른 해수면을 향해 올라가고 싶었다.
































-



여행이 주제인데 왜 이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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